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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 취미생활/아둥바둥 국내 회사생활

대학원 석사 시절, 포항가속기연구소 출장

by YK Ahn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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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석사시절 한 여름날, 박사과정의 사수형이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실험할 것이 있다고 하여 당시 석사과정 3학기에 있던 형과 함께 포항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연구가 Phase change RAM에 사용하던 Ge, Sb, Te라는 물질을 1nm이하의 박막형태로 다층 증착한 후, 이 박막층들 간의 구조적인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워낙 당시 박사형은 좋은 장비를 사용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신념이 강하여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있는 XRR 장비를 사용 예약을 한 것이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가속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입자충돌을 위한 가속기는 아니다. 양성자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가속시킨 후 서로 충돌시켜 부서져 나오는 입자들을 관찰하는 가속기를 입자가속기라고 하는데, 이런 가속기는 크기도 굉장히 크고 전력도 엄청나게 소비하기 때문에, 내가 석사과정에 있을 당시한국에는 이런 입자가속기가 한국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경주에 양성자입자가속기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포항공대에 있는 가속기는 방사광 가속기로, 입자가속기와 마찬가지로, 입자를 고속으로 가속시키는데 이때의 가속이라 함은 원운동을 말한다. 원운동을 하는 입자는 이때 방사선을 내뿜게 되는데, 이때 나오는 방사선이 일반 실험장비에서 만들어내는 방사선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이를 실험에 이용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방사광 가속기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하여 실험을 하기 위해서 포항가속기 연구소로 간 것이었는데,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화가 와서는 실험 샘플을 몇개 놓고 왔다고, 포항으로 가져와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급하기 계획에도 없던 포항을 가게 되었다. 

 가난한 대학원 시절이라, 우선 샘플을 챙겨서 서울역으로 가면서 무슨 돈으로 가야 하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을 거의 모두 다 써서 산 기차표. KTX도 이때 처음 타 보았다.

처음 타 본 KTX에, 탈선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며 갔던 기억이 난다.

 KTX를 타고 대구까지 간 후, 무궁화호로 갈아타서 다시 포항으로 가는 길. 포항공대가 상당히 외진 지역에 있어서 포항기차역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타고 가야 했는데, 현금이 바닥나 가지고 있던 비상금 미화 $100을 근처 은행에서 환전한 후 사용하였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 도착 후, 명부 작성 및 간단한 교육을 받아야 연구소 내로 입실이 가능하다. 처음 보는 가속기 내부라 한바퀴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였다. 암울한 대학원생들의 삶...

당시 가지고 있던 소형 디지털 카메라에는 손떨림 방지기능이 형편없어서 이렇게 제대로 된 사진이 거의 없다

 이게 우리가 사용할 XRR 장비. 왕복 비용만 사비로 10만원 넘게 들었던 이 출장에서 측정한 데이터는 결국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내게는 실험에 대한 세밀한 계획이 없이 무작정 진행하면 망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건이었다. 비록 내 실험은 아니었지만, 시간과 돈, 공을 들여도 그래프 하나도 못 그리고, 논문에 한줄도 쓸 수 없는 그런 데이터가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실험 계획을 잘 짜고 시뮬레이션과 예상되는 결과들을 생각해서 진행하는 것이 이런 실험 실패를 방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은 이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개발엔지니어를 할 때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지금은 주변이 많이 발전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이 곳을 다녀온 후 '포항공대 학생들이 연구를 잘하는 이유가, 학교와 그 주변에서 할 수 있는게 공부와 연구 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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